기적수업 135과
나 자신을 방어한다면 나는 공격 받았다.
1.나 자신이 공격받았고, 그 공격이 실재이며, 스스로 방어하여 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누가 자신을 방어하려 하겠는가? 여기에 방어의 어리석음이 있다. 이 어리석음은 허상에 완전한 실재성을 부여한 다음, 허상을 실재인 양 다루려고 한다. 그것은 허상에 허상을 더해 교정을 몇 배 더 어렵게 만든다.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다시 되살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현재를 구성하기를 시도할 때 네가 하는 일은 그것이다.
My view)
실재의 나는 위협 받거나 공격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어는 필요가 없다. 방어한다는 것은 곧 외부의 것이 나를 공격한다고 믿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나약하고 공격받고 위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나의 거짓 자아가 방어하려 할 때 떠올려야 한다.
"나 자신을 방어한다면 나는 공격 받았다. 나는 위협받을 수 없고 위협받을 수 있는 비실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님의 평화가 있다."
허상에 실재성이 부여되면 그 허상을 나는 실재라고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허상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허상을 만들게 된다. 돈. 가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가 아니다. "돈"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약속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재라 믿는 순간 그것을 더 가지고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방어를 구축한다. 은행, 금고...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시간, 노력, 재화(또다른 돈과 물질)가 들어간다.
돈, 지폐, 은행의 잔고 숫자. 이것을 활용하는 도구 이상으로 자신의 것을 투영하는 순간 그것에 연결되는 또 다른 허상 안에 나는 갇히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미래를 계획하고, 위협받았고 아팠고 상처받았다는 과거를 되살려 그 기억에 근거하여 방어한다. 그 틀 안에서 방어하기 때문에 내가 위협이라고 받아들인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지금 나는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틀림없이 위협 요소가 있으므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행동한다.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선천적인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적절한 방어 태세를 갖춰 대응해야 할 위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세상은 바로 이 정신 나간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세상의 모든 체계, 세상의 모든 사고와 의문, 처벌과 막강한 군사력, 법률상의 정의와 규범, 윤리와 지도자와 신, 이 모두가 세상이 경험하는 위협의 느낌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가슴을 두드리는 공포를 느끼지 않고서야 갑옷을 두르고 세상을 걸어 다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My view)
율법 같은 것들의 목적이 무엇일까? 벌주고 가두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어 그것 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 같은 조항들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 무리에게 울타리는 율법 같은 제한 같지만 안에서는 안전과 자유가 있다.
순간 울타리를 벗어날 때는 해방감? 을 느낄지 몰라도 그것은 곧 자유를 잃기 시작하는 길이다. 잡아먹히거나 물과 음식을 공급받지 못하거나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창조자가 내 안에 내재하여 있고 지킴과 보호하심이 있다면, 그것이 곧 자유다.
내가 위협받을 수 없다는 것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부터이다.
위협받을 수 있음은 곧 나를 나약하다고 여기는 것인데 내 안에 창조주의 영이 있으며 상속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믿어진다면 어찌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는 모든 해방의 시작이다.
3. 방어가 무섭게 한다. 방어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며, 방어할 때마다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너는 방어가 안전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만 방어는 실재화된 두려움과 정당화된 공포를 증언한다.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갑옷을 더욱 두껍게 하며, 더욱 단단히 자물쇠를 채우면서, 잠시 멈춰 자신이 무엇을 방어하며 어떻게 방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항해서 방어하는지 묻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My view)
궁극적으로 내가 방어하는 것은 나의 몸 (혼과 육신)이다. 나의 몸은 아직 유한한 시간 안에 귀속되어 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이것이 전부라는 가정하에 이 세상의 시스템이 이뤄져 있다. 그러므로 이 통제에서 벗어난 자만이 진실로 몸을 방어하기 위한 거짓 자아의 세계를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다.
4. 먼저 내가 무엇을 방어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매우 약하고 공격받기 쉬운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쉽게 먹이가 되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지 못해 네가 지켜줘야만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짧은 생을 보호하기 위해 늘 보살펴주고 세심하고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연약한 것이 몸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아들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이 몸밖에 없지 않은가?
My view)
몸은 시간이라는 차원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시간의 효율과 돈의 가치를 치환한다. 돈은 주조된 자유라고 몸의 중심이 된 세상은 말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나는 보살핌, 관심이 필요가 없다. 보살핌과 관심 또한 낮은 레벨 방어의 일부이다. 이것을 통해 연결되고 사랑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는 우리를 결코 지켜주지 못한다. 다만 사랑과 연결의 통로, 치유의 통로가 되는 것이 실재이다.
5. 하지만 몸은 두려워할 수도, 두려운 것이 될 수도 없다. 몸은 네가 몸에 설정한 필요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복잡한 방어 체계, 건강을 위한 약품, 보살핌과 관심은 몸에게 전혀 필요 없다. 몸의 수명을 방어하거나, 몸을 치장하기 위해 선물을 한다거나, 몸의 안전을 위해 담장을 쌓는다면, 너는 다만 시간이라는 도적이 너의 집을 털어가고, 너의 집은 썩고 무너지며, 너무 위험해서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6. 이러한 광경이 두렵지 않겠는가? 자기 집에 대해 그런 개념을 갖고서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의 믿음이 아니라면 무엇이 몸에 너를 섬길 권리를 주었는가? 네가 보는 몸의 모든 기능을 몸에게 부여하고, 몸의 가치를 한 줌 흙과 물을 훨씬 능가하도록 설정한 것은 너의 마음이다. 한 줌 흙과 물이라고 인식한 것을 그 누가 방어하려 하겠는가?
7. 몸은 방어가 필요 없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마음이 몸이 충족할 수 없는 임무와 몸의 영역을 뛰어넘는 목적과 몸이 성취할 수 없는 거창한 목표를 몸에 떠넘겨 몸을 혹사하지 않는다면 몸은 튼튼하고 건강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너는 매우 소중히 여기기에 몸에게 정신 나간 공격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몸이 너의 희망과 욕구와 가치와 꿈을 저버리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My view)
몸은 일시적으로 나의 실재인 영이 거하는 곳이며 이 몸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다시 새롭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 몸은 여전히 방어라는 시스템 안에 작동된다. 모든 욕망은 지키는 것이다. 먹는 것은 오늘의 몸을 지키는 것이며, 내일의 몸을 지키기 위해 돈, 음식으로 보호한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 내어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성욕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식욕, 성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심지어는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은 외부의 사람의 웃음조차 자신을 위협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실재는 위협받을 수 없고 비실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님의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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