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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과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지식창업가_CE)/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by Pinkpenguin 2023. 5. 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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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서'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자. 용서의 의미는 쉽게 왜곡되고, 정당한 분노를 부당하게 희생하는 것으로, 불공평하고 과분한 선물로, 진실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으로 지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용서는 기이한 어리석음일 뿐이며, 이 수업이 구원의 근거를 변덕에 두는 듯이 보일 수 밖에 없다. 

 

My view) 왜곡된 용서들

a. 인간의 혼과 육은 정당한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을 '죄'로 여기는 것은 율법으로 또다시 우리를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이를 죄로 여겨서는 안된다.

b. 용서는 불공평하고 과분한 선물이 아니다. 

용서는 그 자체로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구원받은 영은 용서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이 용서가 필요하단 말인가. 용서의 대상은 영이 아닌 혼과 육이다. 

c. 용서는 진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실재. 영에 속한 것들이다. 혼과 육은 사라지고 썩어질 것이라 말씀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실재, 진실이 아니다.

 

혼과 육인 세상에서 사는 동안의 제한 된 '나'의 모습을 부인하는 것이 곧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지금도 올라오는 감정은 과거의 거짓자아의 경험의 메아리가 오늘 나에게 들려오는 메아리다. 

그렇다면 이 메아리가 들리는 것 자체를 부정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이것이 허상의 메아리로 바라 봐야 한다.

 

2. 용서의 의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진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쉽게 교정된다. 

용서의 대상은 거짓에 국한되어야 한다. 용서는 허상 외에는 그 무엇과도 무관한다. 진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진실을 용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든 진실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법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비춘다. 여기에 용서가 필요한가? 영원히 죄 없고 선한 자를 어떻게 용서하는가?

 

My view) 진실인 우리의 영은 구원 받았으며 그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하나님의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영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어찌 하나님의 속성에 용서가 필요한가?

아직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거짓자아의 거짓에 속아 육신의 소욕에 따라 살아가는 상태인 우리 혼을 우리는 끊임 없이 용서해야 한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것이 곧 용서의 실체이다. 

 

3. 진정한 용서를 할 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의 주된 이유는, 아직도 너는 허상이 아니라 진실을 용서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는 용서를 있는 것을 지나쳐서 보려는 시도, 즉 진실을 넘겨보고 허상을 참이 되게 해서 자신을 속이려는 헛된 시도로 이해한다. 왜곡된 이 관점은 네가 자신을 죄 많다고 간주하듯이, 너의 마음이 여전히 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반영할 뿐이다. 

 

 My view) 거짓자아의 거짓에 사로잡힌 우리의 모습은 마치 좀비가 된 인간의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실체가 아닌 것에 속아 있는, 오작동을 일으키는 상태에 사로잡혔다고 가장하자. 그것을 좀비라 칭하겠다. 

좀비가 되어 통제되지 않고 탐욕(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좀비의 모습)스런 괴물같은 모습이 우리의 실체인가 아니며 정상적인 가족, 형제, 친구의 모습이 우리의 본 모습인가?

만약 당신의 가족이 좀비가 되었다가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그가 좀비였을때 비정상적인 모습을 두고 당신은 정죄하겠는가? 나 또한 그랬다면 좀비 같았던 나를 정죄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좀비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돌아왔을 때 기뻐하며 감격하지 않겠는가. 

 

4. 너는 너의 죄를 실재라고 생각하기에 용서를 기만으로 여긴다. 죄를 진실이라 여기면서 용서를 거짓으로 믿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용서는 다른 것들처럼 진정 죄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한 용서는 진실을 거짓이라 말하며, 썩은 것이 마치 초원처럼 흠 없고 눈처럼 희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러한 용서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그 용서는 명백한 잘못을 옳다고 보고, 역겨운 것을 좋다고 볼 것이다. 

 

My view) 죄에 속해 있는 상태가 우리의 실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정죄하고 분노한다. 

나에게 죄지은 자의 모습이 그 사람의 실재라고 여기면 용서는 이뤄질 수 없다. 그때의 모습이 실재가 아님을 받아들일 때 용서가 이뤄진다. 심지어 나 자신도 죄에 속한 상태였음을 알아차려야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즉 그 상태가 나의 본래 진실의 모습, 창조한 바의 모습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우리는 오늘 여전히 거짓자아의 메아리에 속아 살았던 나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용서는 수행해서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 실재, 본래의 모습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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