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 나는 국내 주얼리 브랜드 J사 주얼리사업부 영업팀 대리로 일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회의실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그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거친 욕설들. 이것이 내 일상이었다.
사장은 회의 때마다 담배를 물고 나타났다. 임원들을 향해 쏟아내는 욕지거리는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 같았다. 전 직원이 모이는 월간 회의는 더했다. 임원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워 놓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되 뇌었다.
'이게 정상인가? 이게 회사인가?'
어느 날 들은 타부서 여자 직원의 휴직 신청을 인사팀에서 거부 발언이었다.
'출산후 3개월 휴가도 고마운줄 알라. '라떼'는 한달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이곳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딸이 3-4살이 되던 때였다. 내게도 가족이 있었고,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는 없었다.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1단계: 매일 하루 한 문장의 영어 문장을 외웠다. 잊어가던 영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비즈니스 영어 100문장이 담긴 소책자를 6개월 동안 완전히 외웠다.
2단계: 매일 전화영어 10분을 했다. 화장실에 가서 몰래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부끄러웠지만, 꾸준히 했다. 그래도 어느순간 사내에서는 "H대리 영어잘해, 아침마다 영어로 전화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3단계: 1년 간 계속 이력서를 채용사이트에 올리고 지원했다. 십수 곳을 면접 봤고, 대부분 헤드헌팅을 통해 연결됐다. 서류 50%, 1차면접 30%, 2차면접 20% 떨어졌다. A사 연락을 받기 전까지..
하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A사의 경쟁사이자 국내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서 구조조정으로 20군데 포지션이 나왔다. 지원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2013년 여름 8월,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첫해 2012년, 겨울날엔 굳이 주말에도 백화점 행사를 나갔고 국내 기업들의 보여 주기식 고생이 계속됐다.
그런데 2013년 8월, 평범한 오후였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A사? 그 A사 말인가?
L과장은 차분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OOO에서 대리님 이력서를 보게 됐는데요, 저희 회사에 관심 있으시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운명의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개 포지션에 지원했다.
첫 번째 포지션 인터뷰. 떨어졌다.
'역시나...'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한 달 후, L과장님의 두 번째 연락이 왔고, 다른 포지션 인터뷰 기회가 왔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데 또 감감무소식이었다. 가을이 왔다. 무소식은 탈락이니 그러려니 했다.
10월, 11월, 12월...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됐다.
12월이 되어 서야 L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2014년 1월 면접
2014년 2월 초 합격 통보
2014년 3월 드디어 글로벌 A사(이하 A사)에 과장으로 입사
총 8개월이 걸린 여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가을에 신세계, 티파니, 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의 면접도 봤다. 하지만 결국 운명은 A사였다.
A사 입사 첫날.
출근할 사무실은 잠실에서 강남으로, 출근 시간이 30분이 줄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온 기분이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진짜 워라밸이 있었다. 온갖 복지와 운동 혜택이 있었다. 직급도 과장, 급여도 20% 정도 올랐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외국계 회사를 선망하는구나.'
물론 그곳에서도 2주 후 또 다른 종류의 전쟁터가 열렸다.
완벽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사람이 일하는 곳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봐도 가장 행복했던 직장생활의 추억이 가득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첫 번째 포지션 인터뷰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다. 영어와 한글로 인터뷰 준비 메모를 빼곡히 적어가며 면접에 임했다.
그 모습을 채용팀 L과장이 지켜 보았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A사에 일하던 동료가 바로 과거 국내 E사 시절 나의 입사 동기 M 이었다.
그는 나보다 5살정도 어렸지만 어딜 가든 에이스 였다. M은 나에 대해 좋게 피드백을 줬다고 한다.
국내 J사에서 정말 전쟁 같은 환경에서도 동기들에게 만큼은 늘 친절하게 대했던 것이 10여 년 후 나를 구원해준 것이다.
참고로 L과장은 지금 글로벌 전자 회사 D의 HR 디렉터가 되었고, 그후에 제약기업의 VP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나에게 기회를 준 그분께 지금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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